0. 날이 어두워지네.
1. 아바타를 이제서야 봤다. 이왕 보는 거 한 방에 뽕을 뽑자는 의미로 아이맥스 3D 상영을 챙겨보려 했는데 도저히 자리가 나질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이슈가 되니까 이리도 많이 보는구나. 곧 앨리스가 개봉하게 되니 디지털 상영관 자리를 내줘야 할 상황이라 더 기다리다가는 아예 못 보겠구나 싶어서 일반 상영이라도 챙겨보려 했더니 마침 빈 시간과 빈 자리가 있었다. 표값이 16000원이다. 영화 두 편 볼 돈이네. 내가 이 돈 내면서 영화를 봐야 하나 생각되기도 했다.
1b. 놀라운 경험이었다.
2. 영화 본편 시작 전 앨리스 인 원더랜드의 트레일러가 나왔는데 3D로 보니 신비감이 엄청났다. 팀 버튼 영화는 모조리 3D 영상용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체셔캣의 미소가 허공에 떠오를 때는 나도 모르게 손이 앞으로 뻗어나가 고양이 얼굴을 만지려고 해버렸다. 10년 전 마크로스 플러스를 볼 때 샤론 애플의 공연장에서 3D 영상인 샤론이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며 관중들이 넋이 나가서 우왕ㅋ굳ㅋ 이러는 걸 보며 조까네 ㅅㅂ ㅋㅋㅋ 아무렴 인간이 그래픽 보면서 저럴 리가 있냐 그랬는데 이젠 그럴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기대됩니다. 혼자 보긴 싫은데;;
3. 1과 이어지는 이야기. 나도 어렸을 땐 삐딱하고 반항적인 인간이었던지라, 타이타닉이 개봉했을 때 괜한 심뽀가 나서 극장에서 볼 생각도 안 하고, 볼거리에만 치중한 찐따같은 영화라고 존나 깠었는데 나중에 비디오로 빌려보고 극장에서 못 본걸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는지 모른다. 잘 생긴 우리 디카프리오를 극장에서 못 본게 넘 아쉬웡 *^^* 시발 이런 게 아니라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과정 만큼은 큰 화면에서 귀를 울리는 배의 비명을 들으며 감상해야 마땅했을 장면이다.
늦었긴 했지만 아바타를 극장에서 본 건 문화적 기쁨이었다. 디지털 미디어가 쏟아져 나오며 개인이 보유한 디스플레이의 갯수가 늘어나는 속에서 극장이라는 고전적 환경이 그 가치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과 변화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4.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술적인 면에서만 이야기하고, 한국에서도 아바타같은 컨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인재육성과 개발지원을 하느니 어쩌니 하지만 조까는 소리 하지 말고 너넨 땅이나 보러 다녀라.
스토리 없이 볼거리만 있다고 조롱받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진화와 생물학 등 많은 분야의 지식과 이해가 필요했는지에 대해 전혀 생각치도 않는 감상문을 쓴다는 것조차 치욕스러운 졸평들을 봤던 내 자신의 목적성 없는 웹서핑을 반성하고 있다. 누군가 기역을 만들었으니 그것보다 더 나은 니은을 만들면 니은이 승리하니 기역이 나오길 기다린다는 후발주자 전략에 대한 맹신이 갑갑할 뿐이다.
5. 앗 전화온다.
niMishel 100226 1834.
0. 몸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듣기엔 참 쉬워 보이지만 몸이나 마음이 간다고 현실도 거기에 따라가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몸 가는대로 행동하거나 마음 가는대로 행동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몸도 마음도 가지 않고, 그냥 말만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은 참 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 거 같다.
0b.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게 좋은 것 만도 아니다. 바디 랭귀지라고 해야 할까… 행동력 있는 사람들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말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가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자 봐라 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라고 몸으로 말하는 건, 결국 말하는 거다. 몸을 움직이는 게 앞서다 보면 결국 말 실수가 아니라 행동 실수가 많아진다.
0c. 글 역시 실수 연발. 아 세상 너무 위험해.
0d.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나하나 제한하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극단적인 케이스를, 개그 만화에서 종종 보게 되고 실제로는… 보던지 말던지.
1. 구글 리더에는 사용자가 구독하는 RSS 성향을 보고 구독 추천을 해주는 기능이 있다. 얼마 전에 그 기능을 썼더니 “당신의 성향에는 다음 블로그를 추천합니다.” 하면서 Tacticat을 추천해 주더라. 세상에, 구글님은 절 너무 잘 아시네요.
2. 해가 갈수록 설 명절에 대한 인터넷 상의 반응이 줄어들고, 시큰둥해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PC통신이 북적대던 시절, 개인 홈페이지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절만 해도 설 연휴에는 게시판이 덕담으로 북적거리고 한복 입은 여자애들 그림이 쑥쑥 올라오고 그랬다. 뭐 나도 그 중 하나였지.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설날의 덕담 강제에서 해방되어 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가정이나 직장 등 행동반경이 제한되며 뒷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취미란에는 독서나 음악감상을 써내야 했던 ‘무난한 겉모습’의 시대에는 따스한 설 덕담 만이 생존의 방법이고 설 연휴를 즐겁게 맞이하는 모습 만을 보여줘야 했지만 이제는 설 연휴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드러내도 흠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비쳐보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또 어떤 깐돌이는 매말라가는 풍토니 정을 잃어가는 세상이니 깝치겠지만 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주사를 부리고 받아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방실방실 웃어야 하는 아름다운 우리네 전통이라면 난 조까라고 해주고 싶네요.
설 연휴에 기댈 거라곤 자기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전달되는 오붓한 떡고물과 며칠 간 출퇴근으로부터 떨어진다는 느낌, 더빙으로 즐기는 야릇한 청각 쾌감 뿐이란 걸 솔직하게 털어놔도 되니 무슨 덕담이 필요할까.
하소연이 덕담보다 더 좋다. 예년의 설 음식보다 잔잔하게 소금 간을 더해서 가족에게 전해주는 아낙들의 손짓에 담긴 못된 심통이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2b. 물론 그렇다고 덕담 자체를 쌩까자는 건 아니고… 좋은 소리 하는데 싫다고 성질내는 것도 못된 버릇이다. 난 못된 버릇이 너무 들어놔서 헹굼질이 좀 필요하긴 하다만…
3. 연휴 동안 억눌려 있었던 심장이 이제 좀 터지는 기분이다. 설을 앞두고 며칠 간 안절부절했었징.
4. 시간이 지나면 문화생산물은 굉장히 뻘쭘해진다. 1980년대 만화들을 다시 보고 있자면 이런 뻔뻔한 소리를 하는 만화가 잘도 출판되고, 사랑받았구나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런 소리가 받아들여지던 시기였으니 가능한 일이지. 그렇다는 이야기는… 2010년에 사랑받고 인정받는 만화 중에도 2040년 쯤에 어떻게 이런 미친 만화가 팔릴 수 있었을까 소릴 들을 녀석들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게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기묘하게 변해가는 거니까.
30년 후에 사람을 경악하게 할 만화가 나루토가 될지 플루토가 될지… 흠흠.
niMishel 100216 1311.